---------- [ Original Message ] ----------

Subject: 6월 13일의 묵상자료를 춘천에서 보내드립니다.

Date: Wed, 13 Jun 2012 00:01:04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4045호(2012.06.13. 수요일) (지은 이: 박성완목사/옥수동루터교회 당회장)

시편 9:13-16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의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본문 마태복음 12:43-50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찬송 305장 <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

http://bible.c3tv.com/hymn/hymn_open_past.asp

새로 열린 창 왼 쪽 위에 "버전선택" 줄에서 우측에 있는 “구찬송가”를 클릭하시고,

바로 아래줄 우측 “바로듣기” 왼쪽 사각 빈칸에, 위 찬송가의 장 숫자(“305”)를 치시고

바로듣기”를 클릭하세요. 새로운 작은 창이 열리고 찬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가족이길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는 게, 최고의 목표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가느라 항상 긴장된 표정에 지친 모습이었지요.

그 목표만 이루면 긴장과 지친 모습이야 당장에라도 사라질 터였습니다.

마침내 그런 날이 왔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박사학위를 받고,

그리 오래지 않아 교수가 된 겁니다. 생각했던 대로 긴장된 표정의 지친 모습은 바로 사라졌습니다.

말끔하고 행복하고 즐거워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지나고 그의 표정은 다시 힘들고 지치고 피곤해졌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일까요?

혹은 사람이란 원하던 걸 이루면 으레 더 높은 것을 바라게 되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 사회학자의 분석은 좀 다릅니다.

그토록 원하던 박사가 되고 교수가 돼서도 행복하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이 박사나 교수들만 만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박사나 교수뿐이다 보니,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꿈이 실은 흔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요.

그러니 꿈을 이루고도 그 실현이나 성취의 가치나 소중함을 거의 느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만약 그 사람이 박사나 교수가 된 뒤에, 같은 분야나 위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분야나 처지의 사람들을 만났다면, 훨씬 행복하고 즐거웠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관계에 대해서는 항상 사람을 폭넓게 만나고 교류하라는 충고가 있는 거겠지요.

행복해지려면 자신의 처지보다 나은 사람도 못한 사람도,

다 서로 친구나 가까운 교제 범위에 넣어야 한다는 게, 사회학자의 조언인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4월 16일 방송>a.


2. 오늘 본문처럼 전혀 다른 배경과 주제를 가진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한다고 하면 힘이 두 배나 들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배경을 찾아보아야 하고,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신 들린 자의 비유(43-45절)와 육적 가족과 영적 가족(46-50절)을 취급하는

본문을 읽었습니다.

귀신들린 자의 비유는

불가(佛家)에서 구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108번뇌를

다 끌어내어 없애버릴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헛수고인가를

잘 답해주는 말씀이라고 생각들게 합니다.

번뇌 하나를 끌어내 놓는다고 하지만,

다른 수많은 번뇌들이 그 자리를 채울 테니 말입니다.

상자 속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는 것과는 다른 얘기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 주제 육적 가족과 영적 가족에 대한 이해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자주 충돌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본문이 종종 판단의 기준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주님을 찾아온 모친과 동생들을 향해서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는 질문을 하셨고,

“나의 모친과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고 분명히 대답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질문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육적인 가족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영적으로만 건강하면 충분한가? 등등 말입니다.

루터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였고,

실제로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요 19:26-27은 십자가 위해서 하신 말씀 중 하나로,

주님은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던 모친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효심이 깊은 어느 아들의 간절한 말과 같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육적 가족 관계를 부정하거나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그런 흑백 논리가 아니라,

그 경중을 말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세례 요한의 책망하는 말씀도(마 3:9) 이런 맥락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적 혹은 영적 가족으로 나누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가족인지 여부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3. 이곳 춘천 중앙감리교회에서 54명의 목사님들이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종일 강의를 합니다.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