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서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간다.” 탠도 아라타의 소설 [붕대클럽]의 첫 문장입니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나이를 먹으면 다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서 상처받은 마음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요?

소설의 주인공 와라는 깨닫습니다.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들을,

매일 마다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결심합니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로. 처음에 붕대를 감은 부인은 부엌칼에 살짝 베인 팔목이었습니다.

정말로 피가 났고, 상처가 생겨서 붕대를 감았지요.

그런데 병원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디노라는 아이가 병원 벤치에서 붕대를 감는 걸 보게 됩니다.

병원 벤치에 붕대를 감아놓고 보니,

조금 전까지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던 곳이 깔끔하게 치료를 받은 것 같았지요.

때마침 와라의 친구 시효가 실연을 당해서 죽고 싶다고 합니다.

와라는 시효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그네에 붕대를 감아줍니다.

시효가 그네를 타다가 실연을 당했기 때문이었지요.

“봐, 시효가 상처받은 곳에 붕대를 감았어. 이제 피가 멈춘 것 같지 않니?”

상처받은 곳에 붕대를 감는다고, 마음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과연 멈출 수 있을까요?

시효는 그네에 감은 붕대를 쓰다듬다가 말합니다.

“이거 좋다. 왠지 편안해지네. 상처를 치료받고 마음이 아주 가벼워진 느낌이야.”

붕대의 효과를 경험한 와라는 친구들과 <붕대 클럽>을 결성합니다.

붕대 클럽은 한 사람이 상처 받은 장소에 같이 찾아가서, 붕대를 감고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일을 합니다.

그 장소들이란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이 함께 간 백화점의 옥상 정원.

매출을 올리려고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아르바이트 공장.

왕따와 성추행을 당한 학교.

수십 년간 일한 아버지가 해고당한 회사.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장소에 붕대를 감고나면, 마음의 상처도 회복되는 걸 느낍니다.

정말 붕대의 효과였을까요? 와라는 말합니다.

“붕대를 감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까닭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상처를 받았다고 인식하게 되고,

나 아닌 사람들도 그래 그건 상처야, 인정해 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게 아닐까?”

상처가 회복될 수 있었던 비결은 붕대가 아니라, 함께 함에 있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떤 이유로 상처를 받았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우리의 시야를 크게 넓혀준다.

내가 제일 상처받기 쉽고 제일 예민하다며, 나도 모르게 이기적이고 오만하게 뻣뻣해 진 마음을,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이 어느 새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이다.”

그래요. 사는 동안 상처를 피할 수 없다면, 치유하는 방법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스스로 인정하는 게 첫 번째겠지요.

그리고 함께 그 상처에 붕대를 감고 애도를 표할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내 안에서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건, 살다보면 다 그런 거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상처입니다. 상처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더 큰 상처가 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3월 19일 방송>


2. 중국 선교를 할 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지만, 신앙의 행위는 다른 행위와 같이 법률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누가 시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외에 그걸 알 수조차 없을 테니 시비할 사람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런데 신앙의 행위는 밖으로 들어나는 것이니, 당연히

시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이 진지하게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신앙인이라고 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그 중심을 헤아리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행위를 보고서 참된 신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지요.


사도는 신앙인들에게 그들의 삶을 항상 돌아볼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첫 단락에서는(1-8절)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할 것과,

둘째 단락에서는(9-12절) 사랑의 실천에 힘쓰라고 말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말에서 행동에서,

그리고 삶에서 기독교인의 향기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그 속마음이라는 것도 인정받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중심이라고 말만 할 뿐, 실제는 “생각한 대로, 뜻한 대로” 살고 있다면

신행일치는 자연스러워야 할 과제이며, 그래서 늘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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