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ject: 7월 13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Tue, 13 Jul 2010 05:40:19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3344호 (2010.07.13. 화요일)
시편 119:05-08
5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유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본문 마태복음 21:23-32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두 아들의 비유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찬송 250장 아름다운 시온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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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의 두 모습 중에서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림이란 그 방법을 모를 때는 쉽지만, 막상 알게 되면 매우 어렵다.” 역사를 빛낸 위대한 남자와 여자들의 한 마디를 새롭게 돌아보는 <그 남자 그 여자의 한 마디>, 오늘은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 애드가 드가의 한 마디입니다.
“그림이란 그 방법을 모를 때는 쉽지만, 막상 알게 되면 매우 어렵다.” 언젠가 드가의 작품 전시회에 갔을 때입니다. 간단해 보이는 소품 앞에서, 한 학생이 옆 학생에게 소곤댔지요. 자신도 그림을 배우기만 하면, 이 정도는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러자 옆의 학생이 그게 그렇지만 않다고 한참 설명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드가의 한 마디, “그림이란 그 방법을 모를 때는 쉽지만, 막상 알게 되면 매우 어렵다.” 라는 말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림만일까요? 모든 일, 모든 직업, 모든 역할이 다 그럴 겁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무엇이든 다 쉬워 보이지요. 잘하지 못할 이유나 까닭이 없을 만큼 쉽고 간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해 보면, 다시금 깨닫게 되지요.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요. 간단한 악기하나 배울 때도 그렇습니다. 보기엔 금세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지요. 막상 배워보면 연주는 그만두고, 기본음을 다 내보기도 전에 “어려워서 못하겠다.”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보면, 쉬운 게 없습니다. 이젠 하는 일이 마냥 쉽겠다 싶은 대가들 역시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느낌이다. 말하는데요. 깊이란 어느 단계에서 든 고통과 인내와 겸손을 요구하는 것 같지요. 무엇인가를 제대로 해가려면, 쉽다, 간단하다 이런 섣부른 단언 이전에, “그림이란 그 방법을 모를 때면 쉽지만, 막상 알게 되면 매우 어렵다.” 라는 드가의 말처럼, 보다 진지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7월 10일 방송>
2. 논쟁이라는 용어는 매우 차원 높은 대화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비열하고 저급한 차원의 대화가 될 수도 있음을 보곤 합니다. 오늘 소개되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있었던 논쟁도, 그런 저급한 차원의 대화가 될 뻔한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의도에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잘 사용하는 논쟁 법을 들고 나왔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성전에서 이런 일을 할)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질문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전에서 가르칠 권세는 허락된 사람들 외에는 할 수 없다는 상식을 상기시킵니다. 제사장이나 백성의 장로가 괜히 세워진 사람들이냐? 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가 보아도 질문이 성립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을 하기에 앞서서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란 단서를 붙인 다음에, 그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냐? 하늘로서냐? 사람으로서냐?”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의 논쟁은 처음부터 방향성이 다름을 느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전이 갖는 외적 권위를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서, 예수님은 성전의 내적 권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구조나 조직이 중요한 것은 그 성전이 사람들에게 주는 내용과 목적이 제 값을 지닐 때입니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성전을 슬퍼하기는커녕 성전의 외형적인 구조와 조직 혹은 활동에만 골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시대에 나타난 예언자의 소리를 철저하게 은폐한 채, 성전의 화려한 성구들과 성전 종사자들의 교만한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는 환히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런 슬프고 부끄러운 모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예언적 음성을 외면한 현대의 교회들도, 겉치장에만 심혈을 기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세를 자랑하고 활동을 내세웁니다. 모두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고 말은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들의 영광을 확보하려는 술수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성전(교회) 예배 자들이야말로 첫째 아들에 해당된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눈에 가시처럼 거슬리는 둘째는 아버지 면전에서는 거역하였지만, 그는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반항적인 기질의 예배자임을 자처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확인하는 그런 강한 의지로 일하지 않는 한, 교인들을 값싼 은혜나 찾도록 만드는 세속주의자들을 양산(量産)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교세(敎勢)의 크기로 신앙의 진위(眞僞)를 가늠하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아닐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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