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상자료는 매일 게제됩니다.

---------- [ Original Message ] ----------

Subject: 4월 29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Fri, 29 Apr 2011 05:19:48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3634호(2011.04.29. 금요일)

시편 55:12-16

12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본문 요한복음 16:01-15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失足)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聖靈)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찬송 519장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www.holybible.or.kr/HYMN/cgi/hymnftxt.php?VR=HYMN&DN=519&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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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60년 전쯤 내가 젊었던 시절에 말이야, 한 처녀를 만났단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여덟달 만에 끝장이 났어.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거든. 그 때 나는 그 처녀에게 평생 잊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어.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단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하늘 할아버지가 어린 모모에게 했던 말입니다. 참 어쩌면 믿기 힘든 말이고, 사실이라면 불가사이하지요. 아무리 사랑했다고 해도 60년 전에 만난 처녀를, 그것도 여덟 달 밖에 보지 못했는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겪었던 대부분의 일들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60년 넘게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는 건 60년 동안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우등생을 만드는데 반복 학습만한 효과가 없다고 하는데, 무려 60년 동안 반복학습을 했으니 얼마나 생생할까요? 어쩌면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보다도 더 생생할지 모릅니다.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고, 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순리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오랜 세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그냥 쉽게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가끔씩 걱정이 됐지.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았고, 더구나 기억을 지워버리는 지우개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니, 보잘 것 없는 인간인 내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었겠니. 그런데 이젠 안심이구나. 나는 죽을 때까지 자밀나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사람의 진정한 사랑과 꿈이라는 건,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공중 부양하는 것과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인생에서 정말로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것은 나의 일부가 되어 평생 어디든지 따라다닐 것이며, 나의 일부는 나의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것이 될 테니. 그러니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비록 지금 나를 내리 누르는 공기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1년 3월 25일 방송>


2. 예수 믿으면 억울하게 죽을 수도 있고, 전혀 예상 밖의 모욕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만일 이런 질문을 교회에서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별 웃기는 말씀도 다 하십니다.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소리네요. 복 받으러 왔지,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해요? 이런 반응이 나올까 걱정스럽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저를 가르치신 구약학 교수님이 정치교수로 낙인 찍혀서 서대문 감옥에서 고생을 하시다가 출옥하셨습니다. 그 때 환영회 비슷한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문을 여셨습니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장준하 선생께서 하루는 당신 집에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장의 종이를 꺼내놓더니만, 여기 서명하시오. 그런데 목이 잘릴 수 있다는 것은 아셔야 합니다. 라고 했더랍니다. 그런데 별 큰 뜻 없이 거기에 서명했고, 그것이 빌미가 돼서 여러 해 옥살이도 하시고 고초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1-4절). 흔히들 예수 믿으면 천당 가는 것인데, 이게 무슨 흉한 말일까요? 지금 우리 기독교회가 중세 교회 못지않게 세력을 잡게 되면서, 타락 일변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속 권세의 상징인 왕과 제후들을 교황이 임면하는 시대, 교회당보다 더 높은 집을 지을 수 없는 시대, 사제들이 화려한 옷을 걸치고 최고의 예우를 받는 바로 그 시대가, 가장 어둡고 답답한 암흑시대가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철이 덜든 사람들은 그런 기독교 천지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속임수를 쓰고 있습니다. 어느 모임에 가니까 기독자들 가운데서 대통령이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명사가 되어서 빛과 소금이 된다면 절대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예수님처럼 종이 되어 섬기며 산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높아지려는 사람들의 속성상 그런 기대는 전혀 무망한 일이겠지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섬겨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 진정성을 확보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100보 전진을 위한 50보 후퇴인 계산으로 그러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아프가니스탄에 그리고 이라크와 예멘에, 그리고 과테말라를 향했던 선교사들에게 진심으로 응원 기도를 할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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