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350호 (2010.07.19. 월요일)
시편 119:49-54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51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54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본문 마태복음 23:01-12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經文)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찬송 236장. 주 예수 크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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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르친 것처럼 살아야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되돌아보는 사물에게 말 걸기. 오늘은 <배낭여행> 편입니다.
기말고사를 끝낸 대학생들 이제 방학을 이용해 긴 배낭여행을 시작하기도 하겠지요. 여름휴가에다가 연월차 휴가까지 합해서, 꽤 긴 배낭여행에 도전하는 직장인들도 있을 겁니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변 종모 씨는, 아예 사표를 쓰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곤 여행도 병이다 사랑도 병이다, 둘 다 자신의 의지로는 거부할 수 없는 병이라는 결론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배낭여행은 다른 관광식 이동여행과는 좀 다르지요. 모든 선택과 판단을 오직 자신의 배낭 안에서 꺼내야 합니다. 그러니 그 어떤 짐보다 먼저 용기와 자유 두 가지 짐을 챙겨야 하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배낭여행을 다닌 이들은 말합니다. 실제로 다녀보면 별다른 용기가 필요 없을 만큼,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또 가장 큰 자유는 가족을 사랑하고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더라고 말합니다. 코칭 전문가인 조나단 크리건이 쓴 [덕스트의 배낭]에선, 한 여행사가 주인공이 덕스터에게 이런 안내문과 배낭을 보냅니다. “배낭에 넣을 내용물이 당신에게 유용한 것인지, 신중히 결정해서 넣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곤 배낭에 골라 넣을 짐으로, 학문 정보 추억 성공 경험 개방성 관찰력 가능성 지혜, 이런 단어들을 열거해 놨습니다. 거기서 선택한 단어를 매고 길을 떠난 덕스터에게, 여행지 사람들이 가르쳐 준 것은 유명 관광지로 가는 방향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당신이 원하는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건 진짜 배낭을 메고 실제 장소로 옮겨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과 가치를 찾는, 사색과 성찰의 배낭여행이었던 거지요. 자, 올 여름엔 어떤 종류의 배낭여행 계획 중이거나 꿈꾸고 계시는지요? 어느 쪽이 됐든 그 배낭에 담고 돌아오는 것이, 그 이후의 날들과 자기 자신의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정표이기를 바래 봅니다. <KBS FM 출발과 함께. 2010. 6. 24 방송>
2. 요즘 일제고사에 대해서 주요 매스컴이 요란했는데, 생각보다는 싱겁게 시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학습정도가 낮은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시작된 일제고사라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학교의 서열화를 공개하려는 의도이며, 결국 학교와 그 교사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제가 될 거라고 해서 불거진 문제 같습니다. 학습 정도가 낮은 학생들을 잘 돌보는 일은 교육자들의 1차 사명일지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에 교사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의의 경쟁심이나 노력과는 달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학교나 학부모는 그런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지 않기 위해서,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입니다. 교육 현장의 파행을 부추기는 일이 될 거라는 우려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나 몰라라 할 성격이 아니어서,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선생의 자격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습니다. 유대인의 선생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이 랍비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받는 존경이 어디로부터 와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나무랄 데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삶에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말과 행실이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이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일찍이 리출이란 신학자는 가치라는 말을 말과 행위의 일치라고 정의했습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라면, 그것도 교육의 현장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한다면, 과연 배우는 젊은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말만을 따를까요? 행동만을 따를까요?
예수님의 말씀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말은 그런 대로 괜찮은데 행동이 달랐던 지도자들이 많았던 시대입니다. 그들 교사들은 말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섬기는 자세나 솔선수범하려는 태도가 아닐 때, 다른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랍비라는 칭호나 대접받는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말을 많이 하는 저와 같은 목사나 교사들이 항상 마음에 품고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중한 말과 그에 부합한 행동, 이런 삶을 본보기로 보여주는 교사와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남 탓만 할 일이 아니라, 먼저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의 기자처럼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을 잘못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처럼 살지 못하는 것을 더욱 더 걱정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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