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riginal Message ] ----------
Subject: 6월 19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Tue, 19 Jun 2012 00:27:56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4051호 (2012.06.19. 화요일) 시편 10:16-18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성경 마태복음 13:53-58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을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저희의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찬송 94장 < 예수님은 누구신가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bible.c3tv.com/hymn/hymn_open_past.asp 새로 열린 창 왼 쪽 위에 "버전선택" 줄에서 우측에 있는 “구찬송가”를 클릭하시고, 바로 아래줄 우측 “바로듣기” 왼쪽 사각 빈칸에, 위 찬송가의 장 숫자(“94”)를 치시고 “바로듣기”를 클릭하세요. 새로운 작은 창이 열리고 찬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목: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계세요?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화가 마티스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한 부인이, 오른 팔을 길게 그린 여인상을 보고 잔뜩 찌푸리면서 한 마디 내 뱉었다고 하지요. “내가 남자라면, 당신 작품 속의 여자와는 차 한 잔도 안 나눌 거예요. 이게 웬 괴물이람. !” 마티스가 말했습니다. “부인, 뭔가 잘못 보셨군요. 이것은 여자가 아니라, 그림이랍니다.” 부인은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팔은 양쪽의 길이가 같다 라는 지식이, 그림을 이해하는 걸 방해했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건 유치원생도 그리겠다.” 라는 말 흔히들 하지요. 하지만 유치원생이 피카소 같은 그림을 그리면, 꼭 가르치려 들겠지요. “얘야, 눈 코 입은 한 얼굴에 있어야 하는 거야. 이렇게 제 멋대로 따로따로 있으면 안 돼.” 그들은 피카소의 그림도 유치원생의 그림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눈 코 입은 한 얼굴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견고한 상식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방해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은 화가가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과 비슷합니다. 화가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색채와 형상인 것처럼, 사람은 행동과 말로 자신을 보여주지요. 그러나 보여지는 것들은 단지 도구에 불과할 뿐, 정작 들려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들릴지 어떻게 보일지는 순전히 상대방의 상상과 추측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에게 매긴 상식과 지식이라는 그 견고한 틀에 가로 막혀서 진실을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사람은 차가운 방에 갇힌 듯 외로워집니다. “이해한다.” 라는 말, 어쩌면 참 기적 같은 말이지요. 그림으로 치면 색채와 형상 너머의 것을, 시로 치면 언어와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의 의미를 알아차렸다는 뜻입니다.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다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틀을 깨고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해해. 너를 이해해.” 라는 말, 한 순간의 벽을 허무는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4월 9일 방송> 2. 주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신 일화를 읽었습니다. 서른 해를 나사렛에서 사신 예수님이셨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목수 일을 하시느라 마을 사람들 대부분과도 교제가 많았을 것입니다. 어느 안식일 회당 예배에 참석하신 주님께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가르치심의 탁월함에 놀라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얼굴은 잘 아는 사람인데도, 그 입에서 나오는 지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는 말입니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하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 일인가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른 말로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란 매우 단편적이고 편협한 것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제 아내나 자식들을 제대로 몰랐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의 감춰진 능력을 몰랐고,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도리어 그들을 이해하는데 방해꾼 노릇을 한 것입니다. 만일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처럼, 목사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평생을 예수님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는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요즘 교계 지도자들이라는 분들 얘기가 일반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분들이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이니 속 좁은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그런 유명한 사람들 이름 속에 끼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을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자 느니, 예수님을 닮자는 말은 참 듣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3. 어제부터 서울 강습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와 엄현섭 목사님이 강의하는 베델성서 성서편 강좌는 성경 자신의 말씀을 배우는 연역법적 성경공부입니다.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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