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riginal Message ] ----------
Subject: 6월 20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Wed, 20 Jun 2012 03:05:13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4052호(2012.06.20. 수요일) (지은 이: 박성완목사/옥수동루터교회 당회장) 시편 11:01-04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본문 마태복음 14:01-12 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찬송 374장 < 너 주의 사람아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bible.c3tv.com/hymn/hymn_open_past.asp 새로 열린 창 왼 쪽 위에 "버전선택" 줄에서 우측에 있는 “구찬송가”를 클릭하시고, 바로 아래줄 우측 “바로듣기” 왼쪽 사각 빈칸에, 위 찬송가의 장 숫자(“374”)를 치시고 “바로듣기”를 클릭하세요. 새로운 작은 창이 열리고 찬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목: 세례자 요한을 평가한다면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육체의 악마]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불리는 레몽 라디게가 19살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그가 천재로 불리는 이유는, 그 나이에 인간에 대한 진실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지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늘 같은 생각만 가지고 한 가지만 바라보면서 살면, 그 일을 너무나 원하는 나머지, 그 바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간절히 소망하면 모두 이루어진다 라는 말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아차, 정신나게 하는 구절입니다. 비슷한 뜻으로 일본의 뇌 전문가 요로 다키시는 [바보의 벽]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한데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다만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계산기일 뿐,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인지를 한다는 뜻이지요. 그 결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바보의 벽이 생겨서 소통을 가로막는데, 그 대표적인 현상중의 하나가, 처음부터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해도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 수집한다는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쉽게 빠져버리고 바보의 벽에 갇혀버리지요. 그렇다면 이 바보의 벽을 깨트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인식하고, 거기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요.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만 있다면, 바보의 벽은 단박에 무너지겠지요? 하지만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보편성과 상식이 필요하지요. 누구나 수긍할만한 보편성과 상식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이 바보의 벽도 조금이라도 허물어트릴 수 있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4월 10일 방송> 2. 한 인간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삶과 죽음을 다 함께 올려다 놓고 저울질해야 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분의 생애를 평가하는 글을 썼다가 화를 당할 뻔 했습니다. 너무 자기 공로를 내 세워서 그러지 말라고 했던 때문입니다. 물론 저 역시 존경해 마지않는 분이었습니다만, 자칫 생전에 아첨하듯 하면 행여 비뚤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후로 미루자고 했던 것입니다. 권력자 앞에서 그를 두둔하고 미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공정한 시선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얘기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굽은 팔을 바로잡기란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장황스럽게 사설을 늘어놓는 까닭은 세례자 요한을 얘기하고 싶어서인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어쩌면 당대 가장 뛰어난 대중 연설가였으며 종교 지도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인도하는 요단 강변의 집회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대를 꿰뚫고 있었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대변하기에 충분한 비판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일화는 주목해야 할 점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발언에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우쭐대지 말라며, 돌들로도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사람들이 숨을 죽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허수아비 왕 헤롯에게 붙들려서 너무도 허무하게 목이 잘려 최후를 맞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삶이 허무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는 세례자 요한이야말로, 정말 보기 드문 풍운아였고, 마지막 선지자였는데 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개선될 텐데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예수님의 길잡이로써 자신을 광야의 소리꾼으로, 불의에 대항해서 회개의 세례를 시행한 자로써, 자신의 삶을 잘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간 사람으로 말입니다. 3. 그제는아산에서 산업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몽골 잘로스(청년/대학생)들 4명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이 안쓰럽고도 대견스러웠습니다. 멀지 않은 훗날 몽골의 미래를 짊어질 귀한 주님의 일꾼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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