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상자료는 매일 게제됩니다.

---------- [ Original Message ] ----------

Subject: 5월 15일 부활절 넷째 주일의 묵상자료를 보내드립니다.

Date: Sun, 15 May 2011 02:46:47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3650호 (2011.05.15.)

시편 60:10-12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성경 요한복음 10:01-10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찬송 442장 <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www.holybible.or.kr/HYMN/cgi/hymnftxt.php?VR=HYMN&DN=442&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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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목자이신 예수님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대개는 네 귀퉁이를 꽉 채우는 구도를 피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홍도의 <씨름>이라는 그림을 보면, 네 귀퉁이가 모두 구경꾼으로 꽉 차 있지요. 모두 이 시선이 가운데 씨름꾼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바깥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엿장수입니다. 미술학자 조정육의 [그림 공부 사람공부] 라는 책에서 보면, 밖을 향하고 있는 이 엿 장수의 시선덕분에 이 그림이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는 거지요. 습니다. 사방을 막아놓고 모두 한 곳만 바라보고 있는 세상, 정말 답답하겠지요. 홀로 씨름판을 등지고 밖을 향하는 엿장수의 시선처럼, 그렇게 우리 숨통을 채워주는 시선, 세상에는 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KBS FM 풍류마을 2011년 4월 20일 방송>


2. 과연 인간에게 자신을 인도할 목자가 필요한가? 진지하게 질문해 볼 문제입니다. 놀라운 문명을 이룩한 21세기라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말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문명의 허구를 직시하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제 길을 걷기 위해서 인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1-2절).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제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평화를 주는 지 깨닫습니다. 씨앗을 뿌릴 때를 알고, 열심을 내야할 때를 알며, 또 열매를 거둘 때와 뒤로 물러나야할 때와 얼마만큼 기다려야 할 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우리 인간들만이 철들지 않은 아이처럼 그 때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까닭은 간단합니다. 꾸역꾸역 제 길을 걸어가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지름길을 택하고, 경제원칙을 앞세우면서 말입니다. 이를 두고 본문에서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고 말씀합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인데도, 마치 특별한 일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우리의 목자는 도둑처럼 담을 뛰어넘지 말고 문으로 들어가라고, 나처럼 따라 살라고 몸으로 본을 보이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삶을 가르쳐 주는 분은 오직 우리의 목자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인격을 회복하기 위해서 인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3-6절).

30년도 넘은 일화입니다만, 독일에서 있었던 루터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어느 저녁 참석자들을 위한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파티의 호스트가 저의 스승을 부를 때, 미스터 지라고 부르지 않고 미스터 원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 서양인들이 성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경우에는 특별한 관계일 때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분명 존경과 사랑 그리고 신뢰를 담은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이름으로 기억할 뿐 아니라, 지금도 그렇게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걸 눈치 채야 하겠습니다. 성은 고사하고 번호로 부르거나, 아예 얘, 쟤 하는 등, 강아지 부르듯 하는 슬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자가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삶의 처지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이 곁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생명을 위해서 인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7-10절).

요한 복음서를 <계시의 복음>이라고 부른다고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 자신을 들어내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바로 계시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낯선 표현입니다만, 유대인들에게서는 익히 들어온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의 유목생활은 풀을 찾아서 유랑하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자연히 양의 우리는 임시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따로 만들 수 없어서, 목자가 가로 누워서 문이 되어 양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양이든 우리 밖으로 나가려면 목자를 밟고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 비유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양들의 생명을 자신의 온 몸으로 지키고 있는 목자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한 순간의 죽음이 아니라, 매일 순간마다 양들이 안전하게 살아남도록 밟혀주고 지켜주는 양의 문으로써 말입니다.


3. 오늘 저희 교회 아침 예배에는 독일 바이에른 주 노이엔데텔샤우에서 한 분 목자가 오셔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선한 목자 예수>가 설교 제목입니다. 은혜 풍성한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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