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상자료는 매일 게제됩니다.

---------- [ Original Message ] ----------

Subject: 4월 25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Mon, 25 Apr 2011 00:35:01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3630호(2011.04.25. 월요일)

시편 54:04-07

4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

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7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報應)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본문 요한복음 14:01-14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求)하든지 내가 시행(施行)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찬송 157장 < 즐겁도다 인 날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www.holybible.or.kr/HYMN/cgi/hymnftxt.php?VR=HYMN&DN=157&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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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또 다른 과제를 위해서 떠나실 주님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놓고 평하든 누군가의 작품을 놓고 평하든, 아름답다 멋있다 정도도 대단한 칭찬이지만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최고의 찬사는 “와 정말 아우라(aura/사람이나 물건을 둘러싸고 있는 성스러운 靈氣) 있다.” 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영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가 발트 베냐민이었습니다. 20세기에 나온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의 하나라는,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처음 썼는데요. 거기서 말하는 아우라의 개념이란 이렇습니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무 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그리고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에 아우라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이 산 이 나뭇가지가 아니라면, 두 번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짜릿하고 아득한 분위기, 바로 그것이 아우라입니다. 그렇듯 아우라 라는 말 속에는 원천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순간은 지나가고 이 산에 드리운 구름의 그림자는 지나갈 것이고, 이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햇볕과 바람도 내일 이 시간이면 달라질 테니까요. 그래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아우라. 하지만 베냐민은 우리가 아우라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우려했는데요.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술 작품도 실황 연주도 풍경도,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복제기술 덕분에 옛날 같으면 부자들만 알고 듣고 보았을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됐지만,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아우라의 상실이 뒤 따른다는 거지요. 어쩌면 그 사실을 우리는 굳이 베냐민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발품을 들여서라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부지런히 찾아가고, 용돈을 쪼개고 아껴가면서 직접 음악회에 가고, 화가가 그린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걸 보면 말이지요. 결국 그럴 때에는 다 같은 바람 아닐까요? 살아있는 아우라를 느끼고 싶어서, 아우라를 느끼는 그 순간의 짜릿함과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싶어서.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1년 3월 31일 방송>


2.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적어도 열 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기쁨과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렴풋하게만 보이던 일들이 눈앞에 전개될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을지 모릅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분의 주변의 분위기라고 하면 딱 맞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숱한 고위 자리들을 저울질하는 것만 생각되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 역사(役事)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온 말씀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하실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3절).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도,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려 하실 때에도,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할 처소를 준비하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만, 가장 빈약한 정보나 지식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나라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필요이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많은 가능성들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태도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이상 혹은 그 이하로는 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임무를 다 마치셨습니다. 그래서 남은 과제를 수행하시려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실 생각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3. 부활절은 어떠셨는지요?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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