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313호 (2010.06.12. 토요일)

시편 109:11-13

11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憐恤)할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 후사(後嗣)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도 도말되게 하소서.

본문 마태복음 13:36-43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을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찬송 225장. 새 예루살렘 복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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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해석의 과제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런 말들 속에는 은연중에 나 자신이 마음보다 한 계급쯤 더 높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내 마음쯤은 내가 쉽게 부릴 수 있어야 한다는 약간은 고압적인 태도도 없지 않지요. 하지만 이 문재 시인은 마음을 수만 개의 꼬리를 가진 도마뱀 같다고 했습니다. 잡았다 싶으면 이미 마음은 수만 개 중 하나만 남기고 달랑 남기고 도망친 후이더라. 이렇게 표현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아주 적절한 비유인 셈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음을 다스린다거나 장악한다는 대신에, 한 수행법에 따라 그저 마음을 중계방송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난 지금 질투를 하고 있어.” “응, 지금 이 감정은 자격지심이야.” 이런 식으로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만을 스스로에게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거지요. 그런데요. 어쩐지 시인의 방법이 마음을 다스리고 장악하는 법 보다, 더 현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마음보다 한 계단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방법이 아니라, 내 마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 마음과 친구가 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질투를 하고 있다. 힘들다. 외롭다. 이렇게 나에게 그 때 그 때 말해주면, 위로도 격려도 조언도 훨씬 더 쉽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지요. 위에 선 자세로 다스리거나 장악하려고 하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던 마음도 내가 눈을 낮추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 어쩐지 정답게 동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인이든 내 마음이든 내려다보지 않고, 나란히 곁에 서야만 더 오래 함께 걸을 수 있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0년 5월 6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가라지 비유>를 제자들에게 해설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진 담화(談話)라고 서두에 언급하고 있습니다(36절). 흥미로운 것은 3세기의 교부 오리겐에 의해서 시작됐다는 4중의 해석(도덕적, 문자적, 우의적, 신비적 해석)을 주장했던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게 하는 본문입니다. 곧 밭은 세상,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가라지를 심은 자는 마귀, 추수 때는 세상 끝 하는 식의 우의적 해석을 오랫동안 사용하도록 근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는 어떤 구절들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4중의 해석을 적용하느라 우스꽝스러운 해석도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의적 의미를 끌어내느라 말씀을 곡해하는 해프닝도 벌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석이란 언제나 두 가지 서로 다른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본문 자체의 상황과, 그 본문을 읽는 사람의 상황이 그것들입니다.

대체로 신학적인 훈련을 열심히 받은 사람들은 성경 자체의 상황을 찾는데 열중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 보려는 노력을 기우린다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설교를 듣는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긴박감도 흥미도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성경을 자신의 상황에서만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본뜻이나 정신과는 전혀 딴판으로 빗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큐티(QT)라고 하는 성경공부가 지금까지도 인기리에 학습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신학교에서 주석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을 때, 저의 한 친구가 성경 한권을 달랑 들고 큐티를 하는 것을 주목해서 본 일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의 배경이나 성경의 언어, 그리고 문법과 해석의 역사 등을 무시한 채 말입니다. 어떤 말씀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중심적인 말씀이 되지 않을까요?

종교개혁의 공헌은 성경 해석에서도 빛났습니다. 4중의 성경해석이 비판될 뿐 아니라, 역사적 해석방법이란 것이 도입된 것입니다. 성경의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 성경 말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진지한 연구가 뒤따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해석방법은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씨에 반대되는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보다는 율법을 더 강조했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율법주의를 강조한 나머지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는 대신에, 더 큰 굴레 아래로 기어들어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 숱한 예수님과의 논쟁들이 바로 그 구체적인 내용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셨던 일련의 사건과 말씀들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절망하는 세상에 비추는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 복음을 온갖 방법으로 가로막았고 승리하는 듯 했습니다. 십자가가 그 종결로 생각했지만, 부활의 아침에 복음은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


3. 청량제처럼 시원한 비가 밤새 내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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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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