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riginal Message ] ----------
Subject: 6월 30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Sat, 30 Jun 2012 03:06:17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4062호 (2012. 06. 30. 토요일). 시편 16:05-07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基業)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시는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본문 마태복음 17:01-13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저희 앞에서 변형(變形)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草幕)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忽然)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묻자와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찬송 87장 <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bible.c3tv.com/hymn/hymn_open_past.asp 새로 열린 창 왼 쪽 위에 "버전선택" 줄에서 우측에 있는 “구찬송가”를 클릭하시고, 바로 아래줄 우측 “바로듣기” 왼쪽 사각 빈칸에, 위 찬송가의 장 숫자(“87”)를 치시고 “바로듣기”를 클릭하세요. 새로운 작은 창이 열리고 찬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목: 신비체험의 의미를 묵상하기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훗날 영남학파의 영수가 되는 김종직이었지만, 그도 과거에 낙방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속상해서 이런 시 한 수를 지었다고 하지요. “눈 속에 핀 매화, 비온 뒤의 난초, 보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려워. 사람 눈에 들지 않을 줄 진작 알았더라면, 차라리 울긋불긋 모란이나 그려줄 것을.” 눈 속에 핀 매화와 같은 절개, 비 온 뒤에 난초 같은 기품이 담긴 그를 알아보지 못한, 무식한 시험관을 탓하는 시입니다. 깊은 담아서 힘들게 썼는데, 이렇게 낙방할 줄 알았다면, 보기에 좋은 글이나 쓰고 말 걸 그랬다. 그랬다면 시험관의 눈에 들어서 합격했을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라는 부사가 과거형에 쓰이면, 이처럼 이미 가버린 길과 가지 않는 길이 함께 등장해서 비교 됩니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택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와 미련이 따라 붙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고기잡이에서 실패하고, 초라한 자기 방에 돌아와서 했던 생각도 이것이엇지요. “그것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고기 따위는 잡지 않아도 좋았을 테고. 그리고 나는 침대위에서 신문이나 혼자보고 있을게 아닌가 말이다.” 어쩌면 그게 더 낳았을 수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더 이상 “차라리” 라는 말에 속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까” 하면서 말이지요. 과거지사를 놓고 그 때 “차라리” 뭣뭣 했더라면 자꾸만 되뇌면, 정말로 인생의 패배자가 돼버립니다. 그러니 바로 이 노인처럼 얼른 떨쳐내야 합니다. “차라리” 라는 말이 주는, 그 한없는 자기 연민과 후회와 미련과 자책을요. 그러면 “차라리”가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쓰이면 어떨까요? 장 틸레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자살가게]라는 소설을 씁니다. “차라리”가 미래형 문장에서 사용되면 포기나 체념의 뜻이 되기 쉬운데, 작가는 긍정적인 수용의 뜻으로 승화를 시켰습니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을 그 이상을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좋은 면에서 받아들이는 편이 나아요. 목 매달 밧줄이나 권총 따위는 이곳에 맡겨두고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4월 25일 방송> 2. 신비 체험,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종종 경험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이런 신비체험에 초대받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다볼산)에 기도하러 갔던 세 자들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얘기하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모세는 1,500여 년 전 사람이고, 엘리야는 870여 년 전 사람이었으니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만남이지요. 셋이 함께 이 환상을 본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집단 체험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곳에 초막 셋을 짓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위대한 지도자들의 만남을 기념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 분들과 함께 그곳에서 살고 싶은 바람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말로하면 신비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처럼 신비체험을 현실생활 속에서 이어가고 싶어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비 체험의 진정한 목적이 아닙니다. 우선 현실과 신비는 어울릴 수 없습니다. 마치 두 발을 땅 위에 들어 올리고 살려는 사람 노릇을 하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비체험의 의미와 목적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변화산의 신비체험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눈뜨는 기회로 삼으라고 말입니다. 교회력에서 변화산 체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로 사순절의 시작인 성회수요일 사흘 전에 지키도록 구성해 두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해서, 주님이 가실 십자가의 길을 동행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3. 기다리던 단비가 어제 저녁부터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들 심령에도 성령님을 기다리는 갈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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