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riginal Message ] ----------

Subject: 6월 26일의 묵상자료 입니다.

Date: Tue, 26 Jun 2012 03:45:19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4058호 (2012.06.26. 화요일)

시편 14:01-03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 마태복음 15:29-39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고

지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찬송 445장 < 오 나의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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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기를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야흐로 잡초의 계절입니다. 잡초를 맨손으로 뽑아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아실 거예요.

뽑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지요. 뿌리는 흙을 움켜쥐고 흙은 뿌리를 움켜쥐고, 쉽게 놔주질 않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뿌리째 뽑아도 자라고 또 자라고, 그야말로 잡초 근성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잡초는 뽑아도 왜 다시 나고 마는지, 그 이유는요, 뽑히는 와중에서도 자기 씨앗을 땅에 떨어트려놓는데 있는데요.

그토록 질긴 모습은 실패와 절망의 늪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꿈과 소망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잡초라는 그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건 순전히 사람중심의 분류법일 뿐이지요.

모르면 잡초 알면 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풀, 그리고 없어야 할 곳에 있으면 잡초입니다.

잡초인 줄 알고 뽑아 버렸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벌꽃 나물과 광대 나물이었더라 하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니 무엇이 잡초이고 무엇이 풀일까요?

얼마 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강병화 교수는요,

지난 17년간 혼자 전국을 다니면서 야생 들풀 4,439종의 씨앗을 모았고요, 토종 들풀 종자은행을 세웠습니다.

말이 좋아 들풀이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잡초입니다.

하지만 강병화 교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다.” 라고 단언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는 잡초였을 겁니다.”

그렇게 제 아무리 아름다운 들풀이라도 유용한 작물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 잡초가 될 수가 있습니다.

잡초로 분류되면 뿌리째 뽑혀서 버려지거나 다행히 뿌리 뽑히지 않더라도, 관심 밖에서 홀로 피고 홀로 지겠지요.

정민 교수도 [스승의 우편]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어요.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자리는 제자리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4월 19일 방송>


2. 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낯선 기적 이야기들 때문에

마음이 닫힐 수 있습니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기적은 비단 난치병을 말씀 한마디로 혹은 손 한번 잡아줌으로

고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참다운 기적은 뜨거운 사랑의 분출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미움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그 자체 역시 기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비현실적인 현상에 대해서 궁금해 할 일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주목해 바라보자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 그리고

다른 장애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데리고 와서 고치신 일과,

배고픈 군중들을 먹이신 일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였다고 하는 그 신기한 사건에 초점을 두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마음에 끓어오르고 있는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엄청난 기적 가운데로 우뚝 서게 하시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을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그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적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느냐고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바라보는 긍휼의 마음이 있는가를 살피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히 믿음의 대상인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닮아야 할 구체적인 대상인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소경을 눈뜨게 할 능력도, 절뚝발이를 똑 바로 걷게 할 수도 없습니다.

러나 만일 우리들 마음에 주님이 가지셨던 그런 뜨거운 긍휼의 사랑이 있다면,

분명 새로운 형태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그런 기적을 맛보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기적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또 다른 의미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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