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riginal Message ] ----------
Subject: 6월 28일의 묵상자료를 보내드립니다.
Date: Thu, 28 Jun 2012 03:32:04 +0900 (KST)
From: "박성완" <lutherfriend@hanmail.net>
To: "정태한" <bigguy05@paran.com>
묵상자료 4060호(2012.06.28. 목요일) 시편 15:01 ∼ 05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성경 마태복음 16:13 ∼ 20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陰府)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찬송 405장 < 나같은 죄인 살리신 > 위 찬송을 직접 듣고자 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시고 http://bible.c3tv.com/hymn/hymn_open_past.asp 새로 열린 창 왼 쪽 위에 "버전선택" 줄에서 우측에 있는 “구찬송가”를 클릭하시고, 바로 아래줄 우측 “바로듣기” 왼쪽 사각 빈칸에, 위 찬송가의 장 숫자(“405”)를 치시고 “바로듣기”를 클릭하세요. 새로운 작은 창이 열리고 찬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목: 용서받은 기쁨으로 예배드리자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애초에 네모반듯하지 않았다면 없었습니다/ 그저 둥그렇다면 모서리는 없었습니다/ 직각으로 꺾여서 모서리가 생겼지요/ 용감하게 앞으로 가든지 아니면 과감하게 돌아서든지/ 이도저도 아니고 어정쩡하다가 그만 모서리가 생겼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라는 시에 쓴 것처럼, 모서리만 남은 난삽한 집입니다. 자꾸만 모서리에 닿고 치이고 걸립니다. 네모반듯하고 싶었던 꿈이 모서리로 꺾여 그만 넘어집니다. 걸리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아프고, 아프면 슬퍼집니다. 신보선 시인은 그 슬픔을 마술로 표현했어요. 가난한 시인의 아내가 장모님 전화를 받고, “그럼 우린 잘 지내지.”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잘 살고 싶었던 네모반듯한 꿈이 모서리가 되어서 가슴을 칩니다. 아프지만 아파서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는 척 마술 타령을 합니다.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게 하려고, 우는 아내가 식탁 모서리를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마술이다.” 신보선 시인의 <아내의 마술>이라는 시입니다. 모서리를 오래 쓰다듬는다고 달아져서 없어질리 없습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청승맞아서, 온 세상을 슬픔으로 물들여 버리지요. 거리에서 회사에서 시장에서 또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우리는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을 봅니다. 삶의 모서리에 맞고 또 맞아서 마음 다친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다칠수록, 뒷모습은 휘적휘적 텅 비어 갑니다. 그 뒤를 조용히 따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슬픔에 온 세상이 슬픔으로 물든다면, 모서리는 달아서 없어지고 둥글어지는, 그런 신기한 마술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고요.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모서리가 아니겠냐고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4월 23일 방송> 2. 오래 전에 [천국의 열쇠]라는 신앙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목회인생에 가장 큰 인상을 심어준 글이었는지 모릅니다. 부산 대청동에 있는 분도 서점에서 가게 지킴이셨던 노엘 수녀님(2주간 베델성서 지도자 반 동기생)이 꼭 읽어보라고 소개해 주셨던 추억이 있습니다. 수녀님이 계시던 부산 분도수녀원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초대해 주시고, 가톨릭교회를 이해하고 배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해석상 가장 크게 다른 부분입니다. 교회의 기초를 베드로라는 한 인간으로 하느냐(로마 가톨릭), 베드로가 했던 신앙고백으로 하느냐(개신교)의 차이 말입니다.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분명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베드로가 곧 이어서 사탄의 앞잡이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23절),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개신교회의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기초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신앙고백위에 서 있다고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묵상 주제는 사죄의 선언이 교회에 맡겨져 있다는 말씀입니다(19절). 그것을 천국의 열쇠의 직무라고도 부릅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천국의 열쇠는 믿는 신자 개개인이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교회가 맡은 직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고해성사>라는 것을 일찍부터 교회생활에 도입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고해성사를 성례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신학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만, 개신교에서 이 고백의 활동을 교회에서 등한시하는 것에 비해서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훨씬 잘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고백과 그에 따른 용서의 기쁨을 반드시 교회에서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에 대한 용서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확신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자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는 비로소 감격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3. 오늘은 루터대학교에서 예배학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저녁에는 묵상식구 김영화목사님과 함께 몽골 잘로스 격려회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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