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328호 (2010.06.27. 성령강림후 다섯째주일)

시편 115:01-03

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2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본문 스가랴 12:07-10

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榮光)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 그 날에 여호와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獨子)를 위하여 애곡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찬송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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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날에는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빛낸 위대한 남자와 여자들의 한 마디를 새롭게 돌아보는 <그 남자 그 여자의 한 마디>, 오늘은 데카르트의 한 마디, “나는 목적이 있는 사람을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입니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과 수학의 아버지로 칭해지지요. 특히 근대 철학은 전부 다 데카르트를 해석하고 각주를 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데카르트의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 물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겠지요. 사고(思考)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력하게 강조한 말도 드물 겁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실은 인간의 자유의지 연구에 가장 큰 힘을 기우렸었습니다. 자유 의지의 완성이야말로 최고의 참된 행복을 얻는 길이라고 한결같이 역설했지요. 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유의지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유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구속 없는 분방함,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무분별까지도 생각하지요. 목표나 목적 같은 계획된 방향이나 의도, 의지 같은 게 일체 없는 상태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목표나 목적도 없는 자유란, 결국 의지박약과 시간낭비의 다른 말일 뿐이라고 데카르는 말합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신만의 목적이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간섭이나 규격화된 삶으로부터 훨씬 자유롭습니다.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도 훨씬 큽니다. 좋은 목표라면 더더욱 좋겠지요. 데카르트의 “나는 목적 있는 사람을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여러분은 요즘 마음에 품고 있는 목표, 그 목표 덕분에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계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6월 13일 방송>


2. 스가랴는 메시아 왕국의 환상(1-6장), 금식의 의미(7-8장) 그리고 심판과 구원의 예언(9-14장)으로 구성된 구약 묵시문학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유독 “그 날에는”이라는 주제가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그 날이란 미래이며 심판과 함께 구원이 약속된 두려움과 희망의 날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 날에는 유다 장막을 구원하는 날입니다(7절).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먼저 유다의 장막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원래 장막이란 일시적인 거처를 의미합니다. 유목민들이 이동하기 쉽도록 만든 천막의 일종인데, 언제든 옮겨야 할 목적으로 지은 처소입니다. 유대인들은 애급으로부터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비록 가나안에 정착한 후의 유대인의 삶의 모습은 마치 장막에 거하는 것 같은 생활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의 보호자가 되셨고, 인도자가 되셨습니다. 예언자 스가랴는 바로 그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모든 유다 백성들이 그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역시 장막 집에 거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허술하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유다광야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도 자기 백성들에게 향하고 계심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둘째, 그 날에는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는 날입니다(8-9절).

스가랴는 처참하게 파괴된 예루살렘에 대한 기억을 가진 바벨론 포로생활을 경험한 예언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성전이 건축되는 일에 참여하는 남다른 감회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인처럼 끌려가는 비극을 경험했던 자기민족에게, 더 이상 비극은 없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것은 저 용맹스런 다윗을 비유로 삼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거민중의 약한 자가 다윗정도는 될 것이며,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의 사자와 같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던 그 다윗의 신앙과 기개를,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할 하나님의 일꾼들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 이상 이방의 압제에 떠는 일이 없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시류에 맥없이 흔들리는 오늘의 신앙인들이 다윗에게 힘을 주셨던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입니다.


셋째, 그 날에는 은총을 간구하는 마음을 부어주는 날입니다(10절).

참된 변화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심령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그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이 되어 있지 않았음을 성찰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인간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은총에 의지하는 신앙의 회복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가능한데, 죄를 깨닫고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으로, 훗날 요엘서의 예언으로 구체화 되었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성령의 시대 혹은 교회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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