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321호 (2010.06.20.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시편 111:09-10

9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본문 갈라디아서 02:11-21

11 게바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外飾)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異邦)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罪)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犯法)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 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찬송 340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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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란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빛낸 위대한 남자와 여자들의 한 마디를 새롭게 돌아보는 <그 남자 그 여자의 한 마디> 오늘은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알랭의 한 마디 “행복의 비결은 첫째, 웃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웃는 것이다. 셋째, 그러나 웃는 것이다.” 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알랭은 프랑스의 인기작가인 알랭드 보통과는 다른 사람이에요. 그는 생전에 엄청난 양의 어록과 짧은 에세이로 유명 했는데요. 오늘 그의 행복 비결을 되새기다 보니, 며칠 전의 한 모임이 생각납니다. 그날따라 모인 사람들이 모두 다 유쾌하고 밝은 성격의 사람이었던 건지, 모임의 화제를 주도한 사람이 유독 재미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시종일관 갖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이 그치지를 않았거든요. 요즘 유행하는 우스개 얘기들에서부터, 어린 시절 있었던 특유한 추억담들이 넘쳐났지요. 여행지에서의 온갖 실수담들이 쏟아질 때는, 앉은 채로 세상 한 바퀴 여행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특히 그런 모든 얘기들이 그날따라 한결같이 폭소를 자아내거나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모두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프고 주름이 걱정된다고도 했었지요. 하지만 다들 너무나 행복했어요. 다음 날엔 문자로 그동안 쌓였던 온갖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것 같다고, 함께 나누었던 얘기들이 자꾸 생각나서 혼자 자꾸만 웃게 된다고 다시금 웃음 먹은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알랭의 웃음과 행복이 꼭 재미있는 얘기나 유머감각이나 유쾌한 상황만을 뜻하는 건 아닐 거예요. 세 번째, 그러나 우는 것이 다의 그러나는, 오히려 웃을 일이 아닌 웃음이 나오지 않는 힘겨운 상태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도 웃는 게 행복의 비결이라는 건, 억지로 웃으려는 노력 또한 행복을 불러온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저절로 웃음이 터지는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도 웃는, 그러나 웃는 것이다야 말로, 가장 중요한 행복의 비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 단어에 유독 더 큰 강세를 두면서 알랭의 행복 비결을 다시 한 번 새겨보지요. “행복의 비결은 첫째 웃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둘째 웃는 것이다. 셋째 그러나 웃는 것이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6월 5일 방송>

2.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걱정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녀의 키가 자라지 않는 것은 걱정하는데 말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지 않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대사도 베드로와 바나바 역시 믿음 안에서 살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나바도 믿음 밖에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11-14절).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으며, 그의 설교로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케 한 명설교가였습니다. 바나바는 누구입니까? 그는 이방교회의 중심이었던 안디옥 교회의 책임자였습니다. 그런 분들도 한 때는 전혀 다른 믿음 밖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외식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신앙,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얘기가 오늘 본문입니다. 안디옥교회를 찾아 온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들 앞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던 이방인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얼굴을 돌린 것입니다. 까닭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이방인들과 교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 안에서는 인종이나 신분이 구별될 수 없는데도, 그들은 믿음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어리석음을 지체하지 않고 책망한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서 산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15-19절).

믿음 안에서 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기본적인 질문입니다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기독자들의 삶인데 말입니다. 엊그제 한 일간지에서 “한국 개신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제하에 유명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좌담회가 내용이 실렸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성경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주장도, 성경을 영적 심층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교회생활 없는 신앙생활도 부추기는 인상마저도 풍기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율법주의 곧 행위에 다름 아니듯 암시하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교회는 이런 삶을 바르게 가르치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기독자로 제대로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20-21절).

우리들 신앙의 근거와 표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흔들릴 때, 그 보다 더 위태로운 일은 없습니다. 신구약 66권은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흐름에서 일체감을 갖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이르도록 준비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요 20:20-21). 우리가 믿어야 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라는 것이고,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며(고후 5:17), 그 분의 말씀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확신입니다(엡 4:15).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란, 사회적으로 출세하거나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족들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이 나타나야 하고, 일터에서도,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서도 나타나야 합니다(갈 2:20).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비단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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